엔믹스는 30일 오후 인천 인스파이어 아레나에서 펼친 첫 월드투어 ‘에피소드 1: 제로 프론티어’ 두 번째 날 공연에서 항해, 모험, 유토피아 등 뚝심 있게 지켜온 세계관을 문학적으로 풀어냈다. 이미지가 강조된 시(詩)적이거나 사변적인 산문 같기보다 내러티브가 강해 서사화가 분명한 소설을 닮았다.
데뷔곡 ‘O.O’로 공연을 시작했는데, 이 곡은 엔믹스 대항해 시대의 ‘범선의 돛’ 같은 존재다. 해당 곡으로 닻을 올린 세트리스트는 구성이 촘촘하고 드라마틱했다.
“날갤 펼쳐 투 더 스카이” “열기 위로 올라타-타-타” 같은 가사로 비상하는 ‘피닉스’는 이날 공연의 확실한 추동력이었다. ‘리코(RICO)’ ‘별별별(See that?) ‘붐(BOOM)’ ‘대시(DASH)’로 이어지는 격정은 드라마를 만들었다.
‘패스워드(PAXXWORD)’ ‘영, 덤, 스튜피드(Young, Dumb, Stupid)’, ‘브레이크 더 월(Break The Wall)’로 연결고리를 만든 청량 구간은 콘서트에 리듬감을 부여했다. ‘브레이크 더 월’의 노랫말 “다 무너뜨려”가 나온 직후엔 마치 벽이 부서진 것처럼 컨페티가 공연장을 뒤덮었다.
특히 ‘하이 호스(High Horse)’ ‘스피닌 온 잇(SPINNIN’ ON IT)’ ‘노우 어바웃 미’ 등 올해 엔믹스가 발매한 K-팝 명반들인 미니 4집 ‘에프이쓰리오포: 포워드(Fe3O4: FORWARD)’와 정규 1집 ‘블루 밸런타인(Blue Valentine)’ 수록곡들 무대가 높은 완성도를 자랑했다.
역시 ‘에프이쓰리오포: 포워드’ 수록곡이자 변칙 리듬으로 안무와 감정 표현이 쉽지 않은 ‘빠삐용(Papillon)’의 고난도 무대를 거쳐 ‘다이스(DICE)’ ‘占(TANK)’ ‘러브 미 라이크 디스(Love Me Like This)’ ‘블루 밸런타인(Blue Valentine)’으로 이어지는 대목은 화룡점정이었다.
‘뉴 프론티어(New Frontier)’ 시리즈, ‘도킹 스테이션(Docking Station)’ 시리즈를 거친 엔믹스는 ‘에프이쓰리오포’ 3부작을 통해 제대로 된 성장서사를 보여주며 더 빛났다.
벽을 부숴(‘대시’) 자신들의 세상을 드러낸(‘별별별’) 뒤 배를 복원하고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믹스 세계로 나아가는(‘노 어바웃 미’)는 3부작의 서사는 점층법적인 고양감이 일품인데, 이를 물리적으로 구현한 것이 이번 콘서트다.
특히 세트리스트를 꽉 채운 27곡이 밴드 사운드로 편곡돼 원곡과는 다른 질감을 선사하며 ‘육각형 걸그룹’으로 불리는 엔믹스의 내공을 증명했다. 핸드 마이크를 병행하며 흔들림 없는 라이브를 들려준 엔믹스 여섯 멤버의 매력은 곡들과 불가분적 관계였다.
다른 장르의 곡을 섞은 믹스팝의 생동감은 밴드 라이브에서 극대화됐다. ‘블루 밸런타인’이 멜론 톱100 1위를 찍으며 엔믹스·JYP엔터테인먼트의 믹스팝 실험은 완결판이 됐는데, 밴드 편곡은 아이러니하게도 원곡의 타자성을 인식하게 하기보다 좋은 곡은 도식적이지 않다는 걸 증거했다.
믹스팝이라는 다소 난해한, ‘미묘한 회식지대’라는 블랙홀을 통과한 멤버들은 그 현실판인 전날과 이날 콘서트에서 더 성장했다.
릴리의 안정된 라이브 실력은 가창력을 자랑하지 않고, 곡의 드라마에 방점을 찍는다. 해원이 주는 안정감은 엔믹스 판타지 세계관에 현실감을 부여한다. 탁월한 자신의 외모에 압도당하지 않는 단단한 설윤은 엔믹스 정경의 다채로움이었다. 배이의 특별한 리듬감은 엔믹스의 독특한 개성이었다. 지우의 꽃다발 같은 외모는 엔믹스의 풍성한 그림이었다. 규진의 유려하고 확신에 찬 동작들은 엔믹스에 굵은 선을 빚어냈다.
‘엔붐온’, 즉 ‘엔믹스 붐은 온다’라는 의지형은 이제 ‘엔믹스 붐은 왔다’로 현재완료 시제가 된다. 뛰어난 능력과 완성도 높은 무대에도 ‘걸그룹 명가’ JYP라는 출신이라는 이유로 혹독한 ‘인정투쟁’을 거쳐야 했던 엔믹스는 K-팝 신에 취향이 아닌 인식을 형성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기존에 있던 걸 인용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걸 찾아 자신만의 고유성을 찾아내는 일. 그거야말로 이번 콘서트의 키워드인 모험가 정신이다. 다소 늦은 3년9개월 만에 연 첫 콘서트는 그렇게 정당성을 찾았다.
K-팝은 실험실이고 기획사는 실험한다. 엔믹스는 그 가운데 아직 밝혀지지 않은 어떤 가능성을 혼신의 힘으로 탐구한다. 믹스토피아가 저기에 있다. JYP의 또 다른 실험 성공사례인 K-팝 밴드 신을 대표하는 ‘데이식스’ 성진, ‘엑스디너리 히어로즈’ 오드가 이날 객석에서 응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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